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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환경보호)


“너희가 어떤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 이는 너희가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신명기 20:19)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환경운동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오늘날 환경운동의 필요성은 보통 두 가지의 이유로 주장이 됩니다. 첫째는 모든 생명에 대한 동등 사상과 이에 의한 생명존중 사상이고 둘째는 인간의 안락함과 욕심에 의한 환경 파괴는 먼 장래를 생각하면 우리 인간에 도리어 해가 된다는 실용적인 생각에서 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첫번째 주장인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다 동등하다는 주장은 모든 생물체에도 신성이 있다는 범신론적인 주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성경은 범신론적인 생각에서 생명체들을 존중할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처음에는 채소들을 그리고 나중에는 동물들을 우리 인간의 식물로 주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창세기 1:29; 9:3). 또한 창조의 순서를 볼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연 만물을 다 만들고 나서 맨 마지막에 인간을 만드신 창조 순서를 생각할 때, 자연 만물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주어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듯이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로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창세기 1: 26; 2:15; 시편 8:6). 이는 착취를 말함이 아니고 다스림을 말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을 다스리고 보존하는 청지기 적인 사명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자연 만물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가 있어서 주신 것인 동시에 착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스림을 위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연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자연에 대한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우리 인간에게 필요가 있어서 맡기신 하나님께 속한 피조물들을 인간에게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착취한다면 청지기로서 사명을 남용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연을 우리의 욕심을 위해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는 우리가 취하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잘 다스리라고 우리에게 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에 대한 청지기 로서의 사명이요 이는 그리스도인의 환경운동에 대한 기초가 되어야합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유익을 위한 실용적인 이유에서도 자연을 사용 해야지 착취해서는 안됩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전쟁에서 이기면 적의 지역에 있는  농장, 포도원 올리브 과수원 그리고 대추 야자나무들을 다 찍어 없애 버렸습니다. 그런데 1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이러한 식물들을 찍어 내어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신을 위해서 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 자연을 보호하고 그 자연이 주는 산물을 오랫동안 먹고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실용주의 관점에서 환경보호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환경운동은 청지기적 사명의 관점과 실용주의적 관점에 기초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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