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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족의 탄생

성경은 교회를 "가족관계 같은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 같은 것이다"라는 말을 사용하여 비유적으로 말하지 않고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딤전 3:15). 교회는 “가족관계 같은 것”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찿으러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육신의 형제가 보낸 사람에게 ”내 모친과 동생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막 3:34-35) 고 말씀하심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게 될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새로운 영적인 가족 탄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시기 전, 십자가 밑에는 에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두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라고 말씀하셨고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셔서 새로운 가족을 형성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육신의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야고보, 요셉 시몬 그리고 유다가 있었고 누이들도 있었습니다 (마 13:55-56). 그런데 이들에게 마리아를 맡기지 아니하고 왜 피 한방울 썩이지 아니한 요한에게 마리아를 맡깁니까? 요한은 다른 제자들과 같지않게 죽음을 무릎쓰고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고 있는 십자가 앞으로 나아온 제자였습니다. 마리아도 육신의 어머니이지만 죽음을 무릎쓰고 믿음으로 십자가 앞으로 나아온 여인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요한과 마리아를 불러 이제 십자가 안에서 새로운 영적인 가족을 형성하게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 19:26-27절).

어떤 사람들은 믿음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가족으로 부터 버림을 당했고(이슬람 국가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과 같이), 어떤이들은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졌으며 (믿지 않는 가정에서 예수를 신실되게 믿는 사람과 같이), 어떤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위해 본의 아니게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부름을 받아 모든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이나 외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같이). 십자가 믿음으로 인해 육신의 가족으로 부터 멀어진 이들을 우리 주님은 불러 모아서 십자가 안에서 새로운 영적 가족을 만들어주십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십자가의 믿음안에서 새로운 영적 가족 됨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그리스도께서 새롭게 만드셨고,함께 하시며, 그분 자신을 드러내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진정한 상호 교제의 경험은 불가능합니다.

한편, 굳이 교회가 아니더라도 "가족 같은"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다 못 해 우리들 주위에서 흔히 볼수있는 친목계원들간의 관계도 그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습니까? 한 달에 한두 번 모든 계원들이 모여서 걸쭉하게 식사를 하고 계원들 가정에 경조사가 있을때 찾아가 함께 축하해주고 함께 위로해주는 친목계원들과의 관계 말입니다. 성도들과의 관계의 표현은 근본적으로 친목계원과의 관계와 달라야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적인 관계와 예수님 안에서의 영적 가족 관계는 분명히 달라야하고 분명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믿음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우선 순위에 두고 행하는 자들을 모아서 친히 가족을 만들어 주시고 자신도 친히 그 가족의 일원이 되십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믿음 안에서 영적인 가족이라는 이 성경적 진리 안에서 모이고, 예배하고, 교제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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